# 29일 낮 서울 목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개업소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막 아파트 매매 계약을 끝내고 매수자와 매도자, 중개업소 김모 사장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손님이 나가자 김 사장은 “한 달 가까이 공들인 거래를 겨우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집을 산 사람은 40대 중반의 가장. 4·1부동산종합대책 발표 직후 목동 일대 급매물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자녀 교육 문제로 지금 살고 있는 서울 강서구에서 이사하기로 결심한 실수요자다.

김 사장은 “기대만큼 계약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4·1 대책이 시행되면서 조금씩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 지난 17일 인천지방법원 경매 27계. 이날 경매에 부쳐진 인천시 동춘동 동남아파트 52㎡형(이하 전용면적)은 감정가(1억4300만원)보다 1037만원 비싼 1억5337만원에 낙찰됐다.

이 아파트를 낙찰받기 위해 35명이나 입찰했다. 고객 요청으로 이 아파트 경매에 참여한 경매대행업체 직원 김모(32)씨는 예상치 못한 경쟁률과 낙찰가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올 1월에는 같은 단지 같은 주택형이 1억1000만원 정도에 낙찰됐는데 이렇게 높은 가격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후속조치가 마무리되며 4·1대책이 본격 시행에 들어가면서 주택시장에 봄바람이 느껴진다. 학군이 좋은 서울·수도권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매수문의가 늘고 실제 거래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래활성화까지는 멀어 보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4월 주택 거래량은 5065건(29일까지)으로 지난해 4월(4061가구)보다는 많이 늘었고 2009년 이후 4월 평균 거래량(4936가구)와 비슷하다.

4·1대책 이후 집을 구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거주하려는 실수요자라고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말한다. 금융 규제 완화, 취득세 면제 등 4·1 대책으로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 중계동 을지공인 서재필 사장은 “최근 계약된 주택 대부분이 85㎡ 이하이면서 가격이 3억~5억원 정도였다”며 “85㎡가 넘는 중대형은 6억원 이하여서 양도세나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 취득세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도 거래가 잘 안 된다”고 했다.

분양시장도 실수요를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대부분 분양 받아 직접 들어가 살려고 하는 실수요자가 계약에 나서면서 85㎡ 이하 중소형 위주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는 양도세 면제 혜택이 확정된 22일 이후 중소형 16가구가 팔렸고, 경기도 김포시 한강신도시 롯데캐슬 아파트도 같은 기간 중소형만 50여 가구가 계약됐다.

아현래미안푸르지오 정해영 분양소장은 “85㎡ 초과 중대형을 계약한 경우도 있지만 중대형 계약자 역시 작은 집에서 옮기 타려는 실수요자”라고 말했다.

최근 청약 접수한 중소형 주택형인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2지구 푸르지오는 경기도 북북권에서는 오랜만에 순위 내에서 모집 가구 수를 모두 채웠다.

경매시장 실수요 늘어, 재건축 거래 뜸해

법원경매에도 실수요자들이 부쩍 늘었다.

23일 낙찰된 파주시 금촌동 쇠재뜨란재 59㎡형에는 지역 수요자 28명이 입찰 경쟁을 벌였다. 22일 경매에 부쳐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동부화이트빌 82㎡형의 입찰 경쟁률은 24대 1이나 됐다.

법원경매정보회사인 디지털태인 정대홍 팀장은 “주택크기가 작고 가격이 저렴한 물건에만 입찰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감정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중대형 주택은 입찰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집값을 주도하는 서울 강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구) 재건축 시장이 매도 호가는 오르는 데 거래는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치동 에덴공인 윤고용 사장은 “재건축 시장은 투자수요가 대부분이다 보니 호가가 뛴 뒤로는 매수 문의조차 뜸해졌다”고 전했다.

저층(5층 이하) 재건축아파트가 몰려 있는 개포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개포주공1단지 36㎡형은 4·1 대책 발표 직후 6000만원 가량 올라 5억8000만원을 호가하지만 거래는 안 된다.

인근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양도세 면제 혜택이 확정되면 거래가 살아날까 싶었는데 지난 22일 이후에도 이렇다 할 매수세가 없다”며 “집주인만 기대감 속에 호가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용이라는 호재를 맞은 분당·일산신도시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주인만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셈이다.

분당신도시 수내동 K공인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수직증축이 풀리고 난 뒤라면 모를까 아직은 리모델링을 보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어 거래는 안 된다”고 말했다.

4·1 대책, 미풍에 그칠 수도

4·1 대책 효과가 정부 기대와 달리 제한적인 것은 혼란스럽던 회의 입법화 과정에서 기대감이 꺾인 데다 엔저현상 등 좋지 않은 국내·외 경제 상황으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세 완전 폐지는 이번에도 국회 벽을 넘지 못했다.

한빛세무법인 윤주승 대표세무사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당초 정부 발표와 달리 신규 분양주택의 양도세 면제 기준이 까다로면서 투자수요의 동원 능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대책 자체도 부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양도세 면제 혜택 대상을 더 늘리고 금융 규제를 완화해야 투자심리가 살아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추가 대책 등이 나오지 않는 한 4·1 대책의 효과는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실수요자든 투자자든 추격 매수에 적극 나서야 집값도 오르고 거래도 느는 데 추격 매수 동력이 벌써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더구나 오는 6월 취득세 최고 50% 추가 감면안이 종료되면 또다시 거래가 끊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을지공인 서재필 사장은 “그나마 지금 실수요자를 움직이는 힘은 취득세 감면”이라며 “이 혜택이 사라지는 오는 6월 이후에는 거래가 다시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취득세 추가 감면 혜택이 일몰되면서 올해 초 주택 거래가 뚝 끊기는 ‘거래 절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엄근용 책임연구원은 “’1세대 1주택’ 등 이번 대책 곳곳에 붙어 있는 단서조항이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며 “뜨뜻미지근한 물로는 냉수를 덥히기 힘들다”고 주장했다.